이윤희 조각가 : 고통과 치유의 예술 속 질서와 혼돈

이윤희 작가 사진

이윤희 (Yunhee Lee)
S.Korea, b. 1986
세라믹 조각가 (Ceramic Sculptor)
✅ (Link) Artist CV


1. 이윤희 조각가의 수집적 예술세계

이윤희 작가 세라믹 조각 작품
La Divina Commedia, 2021, Porcelain, 65x35x21 cm

소녀의 얼굴, 해태, 해골 더미, 황금, 꽃, 촛대. 죽음과 삶이 환상의 방식으로 어우러진 채 겹겹이 쌓인 <La Divana Commedia>를 비롯한 그의 작품들에는 어디서 온 것인지 모를 환상적이고 몽롱한 사물과 이미지, 색, 테크닉 같은 다른 범주의 것들이 분명히 구분할 수 없게 혼재합니다. 자신을 스스로 ‘수집자’라고 칭하는 이윤희 조각가의 작품은 작품의 부분 유닛들이 모여 하나로 이루어지는 형식과 작품에 내재한 정신 속에 그녀의 수집적 예술세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즉, ‘수집가’ 이윤희가 수집하는 것은 작품 속 형태들과 작품의 정신인 것입니다.

2. 세라믹 조각 변형과 화려한 재해석

이윤희 작가 작품
La Divina Commedia, 2022, Porcelain, 33x29x15 cm

그녀의 우아한 세라믹 조각의 지배적인 이미지는 매끈하고 하얀 백자입니다. 그런데 전형적인 백자의 미감이나 철학을 떠올릴 수 있는 모습은 아닙니다. 꿈 같은 이미지들이 촛대처럼 켜켜이 쌓인 모습, 이에 더불어 그 형태를 감싸는 매끈한 백자 위에는 금을 바르거나 봄꽃의 분홍과 빨강을 발라 백자의 단아함 대신 낯선 화려함을 가졌습니다. 황금과 봄꽃의 색채는 한편 동그랗고 쭉 뻗은 직선의 기하학적 패치에 담기어 띠나 장식으로 사용됩니다. 이국적이고도 이질적인 이미지들과 색, 그리고 형식이 한데 수집된 모습은 무질서 속 질서, 즉 카오스모스적입니다. 어릴 적 동화 속 난파선의 보물을 떠올려보면 그것들은 흐트러져있으면서도 언제나 ‘난파선 보물’로서의 조화된, 단일의 구성을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그녀가 수집한 이미지들이 구성되는 방식입니다.

3. 주요 작품 의미 : 욕망과 불안, 치유의 과정으로서의 예술

이윤희 작가 세라믹 조각
SHY AFTERNOON, 2019, Porcelain, 34x34x74 cm

이윤희 작가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가지고 있는 욕망과 불안”과 이에 대한 “각자의 치유방법”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항상 자신의 주변을 관찰합니다. 그녀가 수집한 욕망과 불안, 그리고 치유방법 중 해골 더미, 소녀, 꽃 같은 이미지로 대변되는 작품 속 광경은 그 모두가 혼재하는 ‘치유의 과정’입니다. 작가는 서로 다른 상처와 치유의 방식을 물리적으로 구현하는데 각자 다른 이야기들을 새롭게 구성되며 하나의 이야기로 다시 탄생합니다. 그런데 그 화려함에서 느낄 수 있듯, 이 이야기 속에서 고통이란 연민의 대상만은 아닙니다.

4. 존재론적 세계의 확장과 변증법

이윤희 작가 전시 사진
SONYE, 2021, Porcelain, 25x18x18 cm

이윤희 작가가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부정성이 없이는 확장하지 않는 우리의 존재론적 세계입니다. 이것은 내가 있고, 내가 아닌 것에 맞서고, 새로운 나로 태어나는 변증법적 과정을 말합니다. 안락함 속에서 우리는 안정하고 고통 속에서는 뜨거운 물의 분자상태처럼 불안정합니다. 물은 그대로 남아도 좋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끝없이 나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우리가 지른 불길 속에서 스스로를 태워 재가 되어야 새로 태어날 것이라고. 불을 지르고 스스로를 태우라는 통렬한 요청은 혼돈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이윤희의 작품 속 이질적인 이미지들이 하나의 작품으로서 질서를 구성하듯 고통과 상처 역시 극복을 통해 존재의 확장이라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원리는 카오스모스적이기 때문입니다.

5. 삶의 변증가로서의 인간 : 고통과 상처 그리고 삶

이윤희 작가 전시 사진

고통과 상처는 인간을 불안하게 하고, 인간은 그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하기에 이들은 오히려 강력한 원동력이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부정성이란 고통이란 존재론적 확장의 기회에 불과합니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작품 속 꿈과 같은 이미지가 널린 모습이 아무리 낯설어도 그것은 언젠가 가장 편안한 곳을 벗어나던 순간, 즉 탄생의 강렬한 충격에서 힘차게 울던 모습으로, 고통을 향해 우렁차게 대항하던 그때 우리의 모습입니다. 탄생 이후로 세계를 확장하는 정반합을 반복하는 우리는 또한, 모두 삶의 변증가들입니다. 이 과정을 우리는 희노애락이라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