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그림 작가 : 현대 미술에 담긴 전통 고려 불화와 성소수자의 나르시즘

박그림 작가

박그림 (Grim Park)
S.Korea, b.1987
Contemporary buddhist art & Queer art
✅ (링크) Artist CV
❇️ (링크) Instagram @grimi_studio


1. 전통과 동시대의 조우

박그림 송은 미술관 전시 전경
2022년 송은 미술대상전 전시 전경

박그림(b. 1987) 작가는 전통 불화의 방식으로 퀴어를 포함한 다양한 동시대 서사를 다루고 있다. 2018년 자기혐오에서 발현된 일종의 동경으로 SNS 인플루언서에 대한 나르시시즘을 연구했던 연작 ‘화랑도(花郞徒)’를 시작으로, 작가 본인에게 부여된 다양한 소수자성을 내포하는 작업을 주로 해오고 있으며, 불교 서사와 개인/사회적 서사를 결합하거나 또는 분해/재조합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동시대의 서사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불교의 ‘심우도(尋牛圖)‘ 설화를 모티브로 자전적인 서사와 결합하여 진행 중인 ‘심호도(尋虎圖)’ 시리즈를 비롯해 동시대에 통용되는 서사와 이미지를 전통적인 표현형식과 결합한 ‘Holy Things’, 이분법적 서사/인물의 반전을 탐구하는 ‘흑화현(黑化現)‘ 시리즈 등 다양한 서사를 통한 여러 시리즈들로 개인/사회적으로 다양한 ‘극복 의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2. 고려 탱화의 색감과 질감의 신비로움

박그림 송은 전시
2023년 송은 ‘PANORAMA ‘ 전시 전경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현재 국내/외를 통틀어 단 한번도 본적없는 새로운 질감과 색감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 낸다. 그 이유는 과거 박그림작가 본인이 전통 고려 탱화를 그리는 스승님으로부터 풀을 끓여 아교(阿膠)만드는 법, 선 긋는 법 등 불교화를 그리는 데 필요한 모든 과정을 도제식으로 수련했고 이를 기반으로 원색에 다른 색을 조색해 사용하는 ‘고색’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그의 작품에는 일반 아크릴 물감 혹은 유화 물감과는 전혀 다른 안개가 낀 듯 은은한 색감이 유일무의하게 발견 될 수 있는 것이다.

3. 화루 (花淚)

박그림 작가 작품
花淚 화루 Tears of flowers, 2022, 비단에 담채, 15.5 x 28.5cm

앞서 말한듯 그의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스승님과의 추억을 기억하며 작업한 작품이 ‘화루 花淚’이다. 춘향가의 하나인 ’긴 사랑가‘ 에 한 대목인 ’화로하면 접불래라=꽃이 늙으니 나비가 찾지 않는 다‘는 뜻의 구절에서 시작된다. ‘화루’는 늙을’로‘를 눈물’루‘로 꽃이 시들어 떨어지는 장면을 ’꽃이 눈물을 흘린다‘로 비유하여 양식적인 측면에서 꽃이 떨어지는 것이 꼭 시듦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만큼 생동감 넘치게 표현하였다. 이는 작가 본인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호접란(인간의 성장에 필요한 양분이자 깨달음을 의미)을 불교적 양식중 하나인 불치(용의지느러미, 화염)와 흩날리는 표현을 통해 ’불에 타지않는 꽃“ 앞에 설명한 꽃의 시듦을 역설적으로 바꾸어 표현하였으며, 작품의 구성 방식을 ‘고전소설’,‘판소리’ 등에서 새롭게 차용, 시도한 작품인 것이다. 이처럼 작가는 단순히 작품을 제작하는 방식 뿐 아니라 고전과 불교에서 말하는 교리 등을 자신의 서사와 연결짓거나 사회 통념을 비판 하는 등 깊이 있는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4. 흑화현(黑化現) 시리즈 : 선과 악의 경계 탐구

박그림 흑화현 작품
黑化現_必 흑화현_필 Turning to the Darkside_needs, 2022, 비단에 담채, 45.5 x 54.7cm

흑화 되어 버린 현대 캐릭터들은 박그림 작가의 전통적인 불교 방식과 어우러져 모든 사람이 악인으로 볼 수밖에 없는 사람, 누구나가 다 선하다고 하는 사람, 그들의 외형적인 모습과 행동에 기인한 오차판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선해 보이나 검은 속내를 감추는 사람들이 있고,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악으로 둘러 이를 감추려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선과 악은 그 표면적 구별이 어렵기에, 예적금강의 정신으로 그들을 잘 구별하고 현 시대 우리의 삶에서 필요한 순간, 우리 또한 예적금강의 모습으로 흑화현(黑化現)을 실행할 의지를 가지길 바라는 마음을 작가는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인물의 백호(이마문양) : 흑화현_심,필에 표현된 백호(이마문양)은 마음 심 자와 반드시 필 자를 문양화 시킨 것으로 탱화양식에서 주인물인 부처와 보살이 아닌 권속들의 옷에 들어가는 글자문을 가져온 방식으로 표현하였으며 이는 ‘소수자성‘을 뜻한다

5. 새로운 동양화, 종교 미술의 발걸음

박그림 작가 미국 언타이틀 아트페어
2023년 Untitled in Miami Art fair, THEO 부스 전경

작가는 이처럼 대중들에게 예술품보다는 종교 공간에서 하나의 정형화된 양식으로 치부되어온 종교화를 현대미술로 승화시키고 이를 통해 성소수자들의 이야기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이 경험하고 느끼게되는 갈등과 차별들을 노래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독창적인 기법과 ‘이분법적 고정관념’을 무너트리는 시도는 지난 수백년간 한국화가 가진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행위이자 동시대 현대 미술 속에서 재 창조되는 새로운 한국화의 모습일 뿐 아니라 세계 미술 시장에서 한국 미술의 독창성과 고유성을 지키면서도 그 우수성과 그 위상을 높이고 있다. 아울러 철저한 양식화와 정형화가 완전히 끝나버린 불교 미술의 상징적 양식을 재구성, 재차용함에 따라 전 세계에서 유일한 종교화와 퀴어아트를 결합시킨 새로운 불교 미술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박그림은 이처럼 문화적 장벽과 갈등 그리고 사회적인 차별 등을 작품 속에 직조해 나가며 앞으로 어떤 새로운 시리즈와 또 깊이 있는 작품이 탄생 할지 수많은 관객들의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